1932년부터 조선 총독부와 만선 척식 주식회사가 간도의 소작농들을 자작농으로 만들기 위해 추진한 정책. 한반도 내에 재만 한인에 대한 민생 문제가 대두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시행하였다. 중국인들에게 매입한 토지를 재만 한인에게 빌려주고 대부금을 갚는 형식으로 진행하였으나, 농업 생산성의 저하로 대부금을 상환하지 못한 자가 많아 오히려 만선 척식 주식회사의 소작농으로 전락하였다.
1927년에서 1930년까지 4차에 걸쳐, 일제가 만주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공산주의 운동가들을 검거한 사건. 제1 차는 1927년 10월에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이 서울에서 진행 중이던 조선 공산당 공판의 공개를 요구하는 시위를 계획하다가 검거된 사건이다. 제2 차는 1928년 9월에 고려 공산 청년회 만주 총국 동만도 간부 등이 국제 청년일 기념집회를 계획하다가 발생하였다. 제3 차는 1930년 3월에 3ㆍ1 운동 11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무장봉기를 계획하다가 발생하였다. 제4 차는 1930년 5월 30일에 동만주 일대에서 발생하였다.
대한 제국 광무 10년(1906)에, 일본 도쿄(東京)에서 조선인들이 설립한 친목 단체. 기독교 포교와 회원 간의 상호 친목을 목적으로 조직하였고, 매년 동경 진재일에는 희생된 조선인의 위령제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기관지로는 1917년 11월부터 ≪기독 청년(基督靑年)≫을 간행하다가 1923년 7월 ≪젊은이≫로 개제하여 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