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적은 출토 석기류와 융기문 토기, 압인ㆍ압날문 토기, 무문양 토기 등으로 보아 중심 연대는 신석기 시대 전기로 파악된다.(→압날문 토기)
기장의 압흔은 기원전 5000년 전후 신석기 조기로 추정되는 융기문 토기 조각 내부 표면에서, 조의 압흔은 기원전 4000년 전후로 추정되는 압날문 토기 조각 외부 표면에서 나왔다.(→압날문 토기)
이런 선후 관계로 볼 때 OO리 융기문 토기는 뒤이어 출현하는 융기문 토기와 압날문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압날문)
이렇게 도장을 사용하는 기법은 통일 신라 토기에서 흔히 사용되던 압날문을 상감 기법과 함께 사용한 것으로 음각의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면서 도장을 기물 전면에 사용한 까닭에 질이 나쁜 태토와 유약의 색을 은폐, 위장하는 데 더욱 효과를 보이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압날문)